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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이라크와 ‘승부차기 악연’을 끊어라

승부차기의 악연을 끊어야 결승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55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한국 축구가 26일 오후 6시 호주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에서 이라크와 준결승전을 치른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만 따진다면 69위인 한국이 114위인 이라크를 한참 웃돈다. 상대 전적에도 6승10무2패로 앞섰다. 조건을 따져도 한국이 유리하다. 한국은 사흘, 이라크는 이틀을 쉬고 준결승에 나서는 일정이다. 한국이 경고 누적에 대한 부담을 털어낸 것과 달리 상대는 주축 미드필더인 야세르 카심(24·스윈던타운)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다.

■승부차기의 악연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시안컵만 따져본다면 한국은 이라크에 철저히 약자였다. 1972년과 2007년 두 차례 만나 모두 승부차기에서 졌다. 1972년에는 조편성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차범근 등 3명이 실축해 2-4로 졌다. 8년 전인 2007년 대회 준결승에서도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탈락했다. 단지 승부차기 스코어만 3-4로 달라졌다. 당시 한국을 누른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꺾고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이라크는 이번 대회에서도 승부차기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8강에서 ‘앙숙’인 이란을 만나 연장전까지 3-3으로 혈전을 펼친 뒤 승부차기에서 7-6으로 누르고 준결승에 올랐다. 만약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면 ‘강팀도 울 수 있는 승부차기의 저주’가 8년 만에 재연될지 모른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이 이라크를 손쉽게 누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과 이란이 8강에서 탈락한 것을 생각하면 방심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파넨카 킥을 막아라

축구 전문가들은 이라크가 승부차기에 강한 비결을 심리 싸움에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론만 따진다면 페널티킥 성공률은 100%에 달한다. 키커가 찬 볼이 골라인을 지나는 시간은 통상 0.4~0.55초 사이. 골키퍼가 볼에 반응하는 시간은 0.6초가 넘는다. 방향만 정확하다면 절대적으로 골키퍼에게 불리한 싸움이다.

그런데 골키퍼의 선방이 나오는 것은 키커를 노려보거나 교묘한 사전동작으로 실축을 유도하는 등 키커의 성공확률을 줄여내는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골키퍼만 고도의 심리적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강공 일변도에서 상대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확률을 역이용해 정 가운데를 노리는 느린 칩슛(공의 밑부분을 살짝 차 올리는 슛)으로 허를 찌른다. 과거 체코 축구의 영웅 안토닌 파넨카가 1976년 유럽선수권 서독과의 결승전 승부차기에 마지막 키커로 나서 상대 골키퍼를 농락하는 칩슛을 성공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데서 유래했다.

이라크 선수들이 강한 대목도 파넨카 킥에 있다. 다른 국가의 선수들은 페널티 스팟(페널티킥을 차는 지점)에서 7~8m 떨어진 곳에서 뛰어와 힘있게 차는 것과 달리 이라크는 4m 정도 부근에서 다가와 강약을 조절한다.

앞서 열린 이라크와 이란의 8강전에선 유누스 마흐무드(32)가 승부차기에 3-4로 뒤진 5번째 키커로 나서 파넨카 킥을 성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기를 면밀히 체크하던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넣어야 비기고, 못 넣으면 지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높은 파넨카 킥을 차는 것을 보고 ‘저 정도까지 승부차기를 즐긴다는 말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유누스는 경기가 끝난 뒤 “우리 동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유누스의 파넨카 킥은 이란의 7번째 키커인 카미스 에스마일의 실축을 유도해 승리를 불렀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마땅하다.

대표팀은 이미 이라크의 승부차기 패턴 분석을 마쳤지만, 역작전으로도 나올 수 있기에 모든 변수를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봉수 코치는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는 게 최선”이라며 “하지만 승부차기에 간다면 꼭 이길 수 있도록 선수별 맞춤 분석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꼭 이라크와의 승부차기 악연을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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