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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여성, 뒤처진 사회①] “여자가 왜?” 잘못된 인식이 빚은 ‘잃어버린 30년’


“여성이 운동하면 3대가 운동한다”는 말이 있다. 자녀, 남편, 부모가 따라서 운동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건강해지고 사회, 국가가 건강해진다.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사회 관계적으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말이다. 여성은 인구로만 보면 절반이지만 스포츠에서는 ‘곱하기 3’이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은 스포츠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 여성들은 ‘여자가 그걸 왜 하느냐’부터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까지 비뚤어진 사회적 통념 속에서 ‘여성다운’ 조신함을 요구받으면서 오랜 기간 운동하고 싶은 욕구를 숨겨왔다. 한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스포츠를 즐기려면 어떤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고 어떤 정책적 접근이 필요할까. 우리 주위에서 운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한국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다. 미취학 시기부터 부모, 지인, 교사로부터 요구받은 ‘성별에 따른 역할분담’이 오랫동안 여성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했다. 소위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 운동하고 싶은 욕구, 뛰어놀고 싶은 욕망을 스스로 억누르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여성들은 제도적, 환경적, 의식적으로 스포츠에서 점점 더 소외돼 갔고 이후에도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마흔 살 전후 비로소 운동을 찾는다. 멀어지는 청춘을 잡아당기고 다가오는 노년에 저항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다. “어릴 때 어른들 눈치 보지 말고 많이 운동할 걸”이라는 때늦은 후회가 “지금이라도 운동해서 다행”이라는 위로로 바뀌면서 운동에 집중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처럼 한국 여성들은 거의 평생 동안 스포츠에서 소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고 자는 것, 움직이는 것은 생존에 직접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게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충족되지 못하고 통합교육을 중시하는 초등학교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김택천 서울 방산고 체육교사는 “어른이 자녀에게 공부만 시키고 운동을 권하지 않은 것은 본능을 말살하는 행위”라며 “운동은 자녀들의 기본권이자 어른들의 절대 임무”라고 말했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그릇된 이미지도 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유정애 중앙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가냘픈 몸매, 하얀 피부가 건강하다는 인식은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신체와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진짜 건강하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택천 교사는 “여학생이 운동에 집중하게 하려면 기회적 평등만으론 부족하다”며 “실효성 높은 결과를 도출하려면 정책과 프로그램 결정 과정부터 평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모에 민감하고 2차 성징이 나타는 사춘기 때 운동부족은 성인기에 들어서는 ‘넘사벽’으로 자리한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마땅한 장소도 없고 기회도 부족하다. 20년 가까이 운동과 담을 쌓은 몸은 너무 뻣뻣하고 너무 둔해 운동을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운동에 매달리는 시기는 40세 전후. 여성 스포츠계에서는 사춘기부터 이때까지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전선혜 중앙대 사범대학장은 “어릴 때 운동하지 않은 여성은 임신기에 운동하기 더 힘들다”며 “임신부 운동법, 영유아 운동법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성이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한 부처 힘만으로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가 자기 영역을 파괴하고 대승적으로 협력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자기 영역, 자기 밥그릇만 고집하며 파편과 같은 정책들만 쏟아내는 정부가 곰곰히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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