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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여성, 뒤처진 사회③] 여학생들도 맘껏 뛰어놀고 싶다

대림초등학교 학생들이 남녀 혼성 농구 경기를 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철학을 갖고 체육수업을 열심히 하는 체육교사들이 여학생들의 체육수업 참여를 강화시키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경기 규칙, 경기 도구 등은 약간 완화시켜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운동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운동에 대해 낯설어하는 여학생에게 조금이라도 쉽게 운동을 시작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움직이려는 본능은 남녀가 똑같고 종목과 내용으로도 남녀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남자들은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들은 싫어한다든가, 남자만의 운동과 여자만의 운동은 따로 있다는 말은 편견”이라며 “이게 빨리 사라져야 여학생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대림초등학교 ‘성별구분 최소화. 남녀 똑같이’

박민영 교사는 교대에서 체육을 심화전공했다. 2011년부터 교편을 잡았고 지금은 담임을 맡지 않고 체육교과전담 교사로 일하고 있다.

박교사는 남녀구분을 최소화한다. 남녀가 함께 어울려 하는 식으로 수업 방식과 경기 규칙을 바꾼다. 남녀 한명씩, 한조를 이루는 짝축구, 짝피구 등이 그렇다. 농구의 경우에는 일정 공간에서는 여학생만 슛하게 하는 식으로 규칙도 수정한다. 박교사는 “운동능력에 근거해 경쟁위주로 수업하면 여학생들은 소외되고 만다”고 말했다.

박교사는 여학생의 운동 욕구를 끌어내기 위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복잡한 규칙에 자꾸 걸리면 흥미를 잃기 쉽다. 그래서 복잡한 규칙은 무시하는 반면 기본자세와 기초용어는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여학생의 태도가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의욕도 높아졌다. 그 다음에는 남녀혼성부 경기를 가미했다. 박교사는 “혼성 경기에서는 남녀가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어울리는 걸 배운다”고 말했다. 박교사는 “저학년 때 체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운동능력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며 “체육은 가능한 한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교사는 반마다 체육부장과 부원을 한명씩 선정한다. 남자가 부장이면 여자가 부원, 여자가 부장이면 남자가 부원이다. 물론 하는 일은 똑같다.

혼성부 농구경기를 한 6학년 안채린양은 “남자와 경기를 하면 힘들지만 실력이 많이 늘어서 좋다”며 “땀을 흘리면서 운동하는 게 엄청나게 재밌다”고 말했다. 6학년 임다연양은 “남자애들과 하는 게 더 재밌다”며 “서로 몸을 부딪치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보평중학교 여학생들이 농구수업 도중 두편을 나뉘어 경기를 벌이고 있다.

■성남 보평중학교 “여학생이 좋아하는 종목 우선”

보평중 학생들은 학년 초 5개 종목 중 원하는 종목 2개를 고른다. 축구, 농구, 배드민턴, 탁구, 방송댄스 중 2개다. 이후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2시간씩 해당종목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체육교사들은 종목 실기에 능하다. 이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종목에는 엘리트 선수 출신 지도자를 초빙한다. 박은경 체육부장은 “본인이 원하는 종목을 실기가 좋은 교사로부터 이론부터 실기까지 확실하게 배운다”며 “자발적 몰입도, 도전의식, 성취감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종목별 자율선택 수업 초기에는 여학생들이 방송댄스에 몰렸다. 햇볕을 피해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서 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은 종목별로 남녀비율이 비슷해졌다. 박부장은 “여학생들은 일단 몸을 움직이는 맛을 보면 더 적극적으로 한다”며 “남학생처럼 액티브하게 활동하는 여학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박부장은 2014년 시작된 자율선택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왔다. 박부장은 “여학생은 잘 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어한다. 짧게 여러 종목을 하는 건 평생체육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1,2개 종목을 잘 하면 다른 종목도 거부감없이 하려 한다”며 “선진국도 한 가지 종목을 3년 정도 가르친다”고 덧붙였다. 박부장은 여자 샤워실, 남녀분리수업이 필요하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박부장은 “옷도 안 벗으려는 여학생들이 한데 모여서 샤워를 하겠느냐”며 “남녀분리수업도 내용과 종목에서 결국 남녀를 구분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고잔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조종현 체육교사로부터 피봇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안산 고잔고등학교 ‘설명은 세심하게, 룰은 철저하게’

조종현 체육교사는 여학생에게도 경기 규칙을 철저히 적용한다. 농구를 예로 들면 더블 드리블, 트레블링 등 초보자를 위해 없애도 될 만한 규칙들을 그대로 적용한다. 그래도 수업에는 문제가 없다. 조교사는 종이카드, 그림 등으로 이론을 충분히 설명한 뒤 실기를 지도하기 때문이다. 조교사는 “룰을 모르면 하는 재미도, 보는 재미도 없다”며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으로 종목에 대해서 이해시킨 뒤 몸으로 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농구수업 도중 조교사가 바운드 패스, 미트아웃을 그림과 시범으로 보여줬더니 여학생들은 금방 몸으로 옮겼다.

이같은 수업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조교사가 체육시간에 밀고 다니는 카트에는 체육교구 뿐만 아니라 용어가 적힌 카드, 블루투스 스피커 등도 있다. 조교사는 “멋진 경기 사진, 관련된 노래와 영화 등을 먼저 보면 종목을 더 이해하게 되고 실제로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며 “여학생의 경우에는 교사가 감정에 호소하는 동시에 더 친절하고 세밀하게, 더 격려하면서 가르쳐야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교사는 다음 학기 배울 예정인 종목을 앞선 방학기간 중 만화, 영화, TV 중계를 통해 학생들이 미리 접하게 하고 있다.

1학년 성지우양은 “선생님의 열정적인 가르침 덕분에 여학생들이 체육수업에서 방치되지 않는다”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운동하면 땀나는 것도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학익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달초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티볼 게임을 하고 있다.

■인천 학익여자고등학교 ‘변형도구, 변형규칙으로 눈높이를 맞추다’

유춘옥 체육교사는 여학생으로부터 운동이 재밌다는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수업수준을 낮췄다. 변형도구를 쓰고 일부규칙을 바꿔 누구나 쉽게 해보고 싶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위함이다. 배구를 예를 들면 공은 실제 배구공보다 크고 말랑말랑한 고무공이다. 약간 빗맞아도 방향성이 유지되고 몸에 맞아도 아프지 않다. 빠르게 튀어 나가지 않아 공을 받아낼 시간도 충분하다. 규칙도 쉽게 바꿨다. 블로킹은 해서는 안되고 볼은 바닥에 한 번 바운드된 뒤 받아야한다. 다이렉트가 아니라 최소한 2차례 볼을 살린 뒤 상대 코트로 넘겨야한다. 힘이 약한 소수 학생은 코트 안에서 서브를 넣게 한다. 유교사는 “선수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기술 습득보다는 흥미 유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교사는 “여학생은 정식도구로 단체종목을 하면 흥미를 느끼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눈높이를 맞춰 흥미만 느끼게 하면 열심히 하고 금방 잘 한다”고 말했다.

유교사는 단체종목과 경쟁의식을 중시한다. 상호 이해, 배려, 협동 등을 배울 수 있는 게 단체종목이다. 유교사는 “연습만으로는 동기부여가 약하다”며 “어떤 종목이든 처음부터 연습과 함께 게임을 무조건 끼워넣는다”고 말했다.

2학년 강혜민양은 “1학년 때 포환던지기도 배웠는데 여자가 그걸 왜 하느냐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며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쳤고 우리도 평소 접하기 힘든 종목이라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3학년 정지우양은 “축구, 농구, 달리기, 배구 등 많은 걸 배웠다”며 “여자들은 정적인 종목을 해야 한다는 편견은 사라져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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